2016. 10. 2. 18:55

4

 

 

……누가 아빤지는 알아?”

 

쵸로마츠의 물음에 오소마츠가 피식 실소를 내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짐작 가는 사람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다. 짐작 가는 사람이 워낙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형제들이랑 붙어먹어서 애가 생겼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쪽팔린 일이기도 했다.

짐작가는 사람도 없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묻는 쵸로마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아아니- 하며 대답한다. 그럼? 마치 수수께끼 하듯이 속 시원하게 대답 않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가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며 다시 물었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형님……. 하며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안타깝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게…… 니네 다섯 외엔 짐작 가는 사람이…… 없거든?”

 

그러면서 난감하다는 얼굴로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다른 형제들의 표정이 굳는다. 볼을 긁적이며 주욱 둘러보자 다들 서로서로 눈치만 본다. 오랜 정적 끝에 결국 먼저 입을 연건 오소마츠였다.

 

왜 다들 말이 없어? 형아 당황스럽게~”

, 그게…….”

 

애써 장난스러운 말투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지만 한번 침울해진 분위기는 당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오소마츠가 이래서 알리기 싫었던 건데……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숙여 손끝만 내려다보던 오소마츠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진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입술을 꾹 깨문 카라마츠가 덥썩 끌어안아온다. 저를 감싼 두 팔이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울 뻔했다. 갑작스런 포옹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손을 들어 마주 안아주자 더욱 세게 안아온다.

 

우리한테 만이라도…… , 하지 그랬어.”

 

목소리가 깊게 잠겨있다. 귓가에 울리는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피식 웃었다. 에이, 형님 체면이 있지~ 그렇게 말하며, 여직 저를 끌어안고 있는 카라마츠의 양 팔을 잡고 떼어내자 차마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린다. 오소마츠가 하아~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자 형제들이 죄다 죄책감 서린 얼굴을 하고는 하나같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오소마츠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왜 다들 죽을상이야, 형아는 진짜 괜찮다구?”

 

그러면서 씩 웃는 모습에 어쩐지 더욱 미안해져서, 더더욱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다들 아무런 대답없이 서로 눈치만 살피는 통에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졌다.

 

아가야 누가 아빤 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너무 심각한 거 같지?’

 

그렇게 생각하며 오소마츠는 배를 슬슬 문질렀다. , 그러고 보니 여태 밥도 못 먹었네.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이 없어서 배고픈 것도 몰랐는데,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나니 이제야 여직 물 한잔도 마시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을 보니 다들 밥을 먹을 것 같지는 않고, 어제 할머니가 가져다 준 옥수수가 남았던 것 같은데. 상할까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옥수수를 떠올리며, 방을 나서려는 찰나

 

좋아, 결심했어!”

-? 뭐를?”

놀랐잖아!”

 

갑작스런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방문을 열던 오소마츠가 깜짝 놀랐는지, 뭐야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쵸로마츠가 두 주먹을 쥐고는 뭔가 큰 결심을 한 듯이 서있었다. 다른 형제들도 제각기 뭐냐는 듯이 당당히 서있는 쵸로마츠를 올려다본다.

 

오늘부터 오소마츠 형의 태교를 도와주겠어!”

, ……?”

, 찬성~ 아직 누가 아빤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 애 일수도 있는 거 아냐?”

오옷- 나도, 나도!”

 

쵸로마츠의 선언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대답한다. ,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 나도 돕도록 하지.

 

, 그래서 이치마츠는?”

…….”

 

홀로 대답하지 않고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이치마츠에게 쵸로마츠가 얼굴을 들이밀며 한번 더 물었다. , 이치마츠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한 이치마츠가 땀을 뻘뻘 흘리더니 이내 대답했다.

 

으응~?”

……, 좋은게 좋은거지.”

그럼 만장일치로 찬성되었습니다!”

……에엑!?”

 

그리하여 오소마츠의 태교라이프 지금 시작합니다.

Posted by 시오넬
2016. 9. 4. 18:07

3

 

 

 “저는 오소마츠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 왜 여자 옷을 입고있음까?”

 “오소마츠라는 사람 모른다고요.”

 “, 왤케 살이 쪘음까?”

 “아 오소마츠 아니라고!!”

 

 오소마츠가 뭐라하건 제 할만하는 쥬시마츠의 모습에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옆에서 보다못한 경찰이 결국 끼어들어서는 자자 두분 다 진정하시구요……. 하며 둘을-정확히 말하자면 쥬시마츠와의 대화에서 홀로 흥분한 오소마츠를-말리기 시작했다. 씩씩 거리며 잔뜩 짜증난다는 얼굴을 하고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헤집더니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오소마츠건 뭐건 여기 안사니까 다들 좀 나갈래요!?”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감싸고는 날카롭게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성이다. 오소마츠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이 난감하다는 얼굴을 했다. 제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단호한 얼굴을 하며,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형님!”

 “에에, 오소마츠형!”

 “형 여기서 뭐해!”

 “, 여자 옷을 입고 있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다른 형제들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완전 엎친데 덮친 격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하고 문을 닫으려 하자 형제들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아 오소마츠형 왜 그래!”

 “형님, 무슨 일 있어?”

 “, 무슨 일 인진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말은 해줘야 알지.”

 “아니 저는 오소마츠가 아니라니까요?”

 “!”

 

 형제들이 답답하다는 얼굴을 해도, 오소마츠는 요지부동이었다. 쉬어야 하니까, 이제 좀 가주시겠어요? 진심으로 피곤하다는 얼굴을 하며, 오소마츠가 반쯤 열린 문을 닫자,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소마츠 형님이 없어지면, 카리스마 레전드 자리는 이 카라마츠님이 가져도 되는거겠지?”

 “뭐라는거야! 카리스마 레전드는 바로 이 오소마츠님…… .”

 

 닫던 문을 활짝 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외치다가 이내 깨달았는지 핫- 입을 막고는 다시 급하게 문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형제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는 오소마츠를 쳐다본다. 곁에 서있던 경찰마저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했다. 그럼 다들 안, 안녕히 가세요.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웃음 띤 얼굴을 하고는 문을 닫으려는 순간

 

 “형님

 “……하하

 “우리랑 얘기 좀 해.”

 “, 경찰관님은 이제 돌아가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어이없게 종결된 실종사건에, 경찰관은 그대로 돌아갔고, 남은 건 마츠노 형제들 뿐 이었다. 오소마츠가 난감한 얼굴을 하며 몰래 문을 닫으려하자, 어허, 형님. 하며 카라마츠가 문 틈새에 발을 끼워넣는다. 도저히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아, 결국 오소마츠가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배가 뻐근하다. 오소마츠는 배를 슬슬 문지르며, 들어와. 한마디 남기고 홱 하니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묘한 분위기에 형제들은 각자 서로를 쳐다보며 눈짓하더니 이내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섰다.

 

 오소마츠는 방 한가운데에 앉아 하나, 둘 방으로 들어오는 형제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치마를 입고 조신하게 앉아있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리 봐도 저건 치마인데 말이지. , 설마 우리들의 장남이 사실은 장녀였다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목욕탕에서 확실히 달려있는걸 봤는데…….

 

 “어이 어이, 이치마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생각하는게 티가 났는지 오소마츠가 황당한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이치마츠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형제들이 서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사나워 앉으라고 손짓하니까 그제야 슬금슬금 자리 잡고 앉는다. 오소마츠가 한숨을 내쉬며 제 앞에 자리하고 앉은 형제들을 둘러보았다. 이상하게 하나같이 다들 조금씩 말라있다.

 

 “나 없는 새에 단체로 다이어트라도 했나? 왜 이렇게 다들 말랐어~”

 “이게 다 형 때문이잖아!”

 “대체 말도 없이 왜 이런 곳에 숨어있던거야?”

 “그 옷차림은 또 뭐고?”

 “, 저기 얘들아?”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전화기는 왜 또 꺼놨는데!?”

 

 오소마츠가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우루루 쏟아지는 말들에 도저히 뭐부터 대답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던 쵸로마츠가 한숨을 쉬더니 잠깐, 잠깐 하며 상황을 정돈 한다.

 

 “자자, 잠깐 잠깐, 다들 이러면 형이 대답 못하잖아. 일단 나 먼저 물어볼게. , 대체 무슨 일이야?”

 “, …… 그게…….”

 “그럼 이게 무슨 꼴인데? 그 옷차림은 또 뭐고?”

 “, 그게 있잖아…….”

 “배는 왜 또 그러는건데.”

 

 쵸로마츠의 심문에 가까운 물음에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고 덥썩 오소마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히익- 하며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단단히 잡혀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쵸로마츠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입술만 자근자근 씹는데, , 잠깐 이게 뭐야……? 쵸로마츠의 뒤로 토도마츠가 무언가를 집어서 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손에 들린게 무엇인가를 알게 되기까지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히익-”

 

 치워 둔다는 것이 깜빡했다. 여직 제 어깨를 붙잡고 있는 쵸로마츠를 밀쳐내고는 후다닥 토도마츠의 손에 들린 노란색의 수첩을 빼앗으려 하지만 이미 펼쳐서 읽고 있는 토도마츠의 얼굴이 어둡다. 이리줘- 하며 손을 내밀어보지만 토도마츠는 말없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오소마츠를 쳐다볼 뿐이다. 토도마츠의 시선을 받아내기가 어렵다. 슬그머니 눈을 피하자 한숨을 내쉰다.

 

 “설마 지금, 이거 때문에…….”

 “……내놓기나 해.”

 

 손에 들린 수첩을 홱 뺏어들고는 방 한구석에 자리한 가방에 우겨넣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만 같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상상을 안해봤던 건 아니지만 막상 닥치니 생각 외로 더 울컥한다. 울면 안 돼, 장남이 돼서 우는 게 어디 있어. 난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국보 님이시라구.

 

 “형님, 설마…….”

 

 토도마츠에게 전달받은 건지, 어쩐건지 동생들이 수군댄다. 가방 앞에 쪼그려 앉아 입술을 깨물며 애써 눈물을 참던 오소마츠가 몸을 돌려, 동생들을 쳐다본다. 어쩐지, 집에 있을 때에도 먹는 양은 줄어드는데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가 이상하다 했더랜다. 카라마츠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 맞아. 나 임신이래.”

 

 그렇게 말하며 웃는 오소마츠의 얼굴에 씌여진 가면이 쩌적- 갈라졌다.

 

Posted by 시오넬
2016. 8. 27. 11:07

 

2

 

 

 잠이 깼다. 놀러온 앞집 할머니와 도란도란 옥수수를 나눠먹고, 수다 좀 떨다가 한 것도 없이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는데, 다리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듯한 통증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겨우 몸을 일으켜 저린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잠이 깨지 않아 몽롱한 정신을 하고 문득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내리 깔린 새벽은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몇 시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시계를 찾다가 생각 없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핸드폰을 켰다. 갑작스런 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충 시간을 확인하자 아직 AM 4:00 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 뭐야, 아직 새벽이잖아. 투덜거리며 아까보다 통증이 조금 덜 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꼬물꼬물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더니 메시지 하나가 들어온다.

 

 [ 긴급구조를 위해 귀하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회하였습니다. (04:03:51) - 112 종합상황실 ]

 

 핸드폰이 켜진 걸 어떻게 알았는지 어두운 방 안에서 핸드폰은 밤새도록 반짝거렸다.

 

* * *

 

 이상하게 소란스럽다. 늘 조용한 동네가 어쩐 일인지 아침부터 시끌시끌했다. 언제 해가 떴는지 세상이 훤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자 대문 밖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반짝반짝, 붉은색 빛도 보이는 것 같다. 아침부터 웬 경찰차래……. 그렇게 생각하며 세수를 할 생각으로 방을 나서려던 오소마츠가 황급히 다시 창에 매달렸다. , 경찰차!? 설마 잘못 본 거겠지 싶어 눈만 빼꼼 내밀고 밖의 동향을 살피자 진짜 경찰차다. 동네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잔뜩 몰려나와 구경중이다. 대체 우리집에 웬일이래. 그렇게 중얼거리는 찰나, 경찰차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내린다. 저와 꼭 닮은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온갖 폼을 잡고 서있는 저건…… , 카라마츠다. 카라마츠를 선두로 줄줄이 형제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당황스런 얼굴을 하고, 창에서 떨어져 나와서는 안절부절못하며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데, 발에 무언가 채인다. 으잉? 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자 밤새 울리면서 배터리가 닳았는지 배터리 3% 하며 어두운 화면을 핸드폰이 눈에 들어온다. 아 그러고보니……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는 것도 같다.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켰…………?

 

아 미쳤어 진짜!”

 

 부재중 2118. 어마어마한 숫자에 기겁하면서 급하게 핸드폰을 다시 꺼보지만 이미 늦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아예 집에 없는 척 할 요량으로 현관문을 잠그려 다가가는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 저 오소마츠씨 되십니까?”

……아닌데요?”

 

 실종되었다고 신고 된 오소마츠는 분명 남성이었으나 지금의 오소마츠는 배가 부르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임산부로 확실히 남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경찰은 미심쩍은 표정을 하면서도 섣불리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세요……?”

 

 최대한 여성처럼 보이려 조심스레 묻자, 아 실종자의 위치가 이 곳으로 확인이 되어서요. 죄송하지만 확인 좀 하겠습니다. 하며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아직 방 안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증거들이 많은데, 큰일났다 싶어 아,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일어 난지 얼마 안돼서요. 다음에 오시면 안될까요? 하며 거절하려는 찰나

 

 “, 오소마츠형!”

 

 아, 젠장 망했다.

Posted by 시오넬
2016. 8. 26. 22:55

1

 

 

으아, 심심하구만~”

  오늘도 역시 마루에 대자로 누워 뒹굴 거리던 오소마츠가 불현듯이 기지개를 쭈욱 피며 말했다. 홀로 시골에 내려온 지 어언 2주째. 생활에는 금새 익숙해졌지만, 놀 거리는 아직도 찾질 못했다. 워낙 아무것도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가까운 마트에 가더라도 버스를 타고 족히 30분은 걸리고, 심지어 그 마트로 향하는 버스마저도 하루에 오는 시각과 운영하는 버스의 수가 정해져 있을 만큼 외진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을 때울 거리를 찾기란 정말 하늘에서 별따기였다. 부른 배를 가지고는 도저히 엎드릴 수가 없어 누운 채로 마루 이리저리 몸을 비비적거리던 오소마츠는 문득 문이 훤히 열린 방 안으로 시선이 갔다. 방 한가운데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아예 위치추적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버스에 오르는 순간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런 곳에 숨어 있다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그래도, 걱정은 좀 해주려나. 괜한 감상에 젖어, 검지손가락으로 코 밑을 슥 문지르고는 입맛을 다셨다.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확실히 여섯일 때보다 여유롭고 -원래도 여유롭긴 마찬가지였지만- 훨씬 더 자유로웠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자유롭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늘상 여섯이서 붙어 다니다가 혼자 떨어져 나오려니 가슴 한 켠이 괜시리 간질간질 한건 어쩔 수 없다 보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르는 서글픔에 괜히 우울해진다. 이 인간국보님이 누구 땜에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서글픔은 분노로 바뀌어, 벌떡 일어나 씩씩대며 화를 삭히던 오소마츠는 이내 에휴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무엇보다도 혼자 생활하면서 가장 불편한 건, 다름이 아닌 이따금씩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 임신을 해서 그런지 부쩍 감정기복이 심해져서는 별것도 아닌 걸로 저도 모르게 한번 씩 울컥 하는 거다. 다같이 지낼 때는 하루하루가 시끌벅적해서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어 당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포옥 한숨을 내쉰 오소마츠는 점차 침울해지는 기분을 애써 떨치고자 양 손으로 양 볼을 짝! 소리나도록 때리고는 큰 맘먹고 도망쳐왔는데, 고작 이정도도 못버틸거같아!? 하며 기운차게 일어났지만 금새 쭈우우 하고 바람이 빠진 풍선마냥 힘없이 늘어졌다.

 

 꼬르륵- 뱃속에서 위장이 배고프다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 배고프네~”

 

  외로움도 외로움이지만 오소마츠를 괴롭히는 건 외로움뿐만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 울어대는 배꼽시계가 오소마츠를 두 번 미치게 만들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들인다는데 본인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으니 말이다. 홀 몸일땐 몰랐는데 뱃속에 애 하나 추가되었다고 이럴 수 있냔 말이다. 마을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챙겨주니 밥이 부족하거나 못 먹고 굶거나 하지는 않지만 역시 먹고 싶은걸 실컷 먹을 수가 없으니 그게 그리 서럽더라. 이따금 티비나 인터넷에서 먹을 걸 맘대로 먹지 못해서 서럽다는 임산부들의 심정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한다. 누가 곁에 있어야 먹고 싶다고 말이라도 해볼텐데 여긴 혼자 있으니 어디다 말도 못하고. 특히 신새벽에 느닷없이 배가 고파 잠이 깨서는 뭔가 몹시 먹고는 싶은데 그 시각엔 차가 없으니 혼자 사러 갈래야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옆에 있어서 하소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하루하루 우울감에 빠져지내기 일쑤였다. 동생들이라면 맨발로 뛰쳐나가서 구해다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본인이 처한 현실은 시궁창임을 새삼 깨달았다.

 

 “으아악! 맥주 마시고 싶다! ! 담배!”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강제 금주, 금연에 들어갔으니 그것도 벌써 한 달째다. 오소마츠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심통이 났다는 걸 여실히 표현했다. 물론,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누가 아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알게 되면 진짜 가만 안둘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소마츠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남이 보면 왜 사서 고생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오소마츠가 시골로 향한 건 그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결과물이었다. 일단 남자가 애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이었고.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제 형제들 중 누군가의 아이인 것은 확실했기에-여기서 우리는 오소마츠의 성가치관에 대해 심히 고민을 해야했다.-이 사실을 알리게 되면 형제 싸움이 될 것이 뻔하였으며 무엇보다 하나 뿐인 장남이 누군지 모를 다른 형제의 애를 뱄다는걸 부모님께 도저히 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낙태를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이미 생긴 애를 지운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모성애라고 해야하나 부성애라고 해야하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올라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애를 낳기 위해 배가 부른 성인 남성이 산부인과에 출입하는 걸 상상하자니 컬쳐쇼크! 결국 홀로 애를 낳기 위해 무작정 연고도 없는 시골로 강행한 것이다.


 “심심해, 배고파, 심심해, 배고파!”

  한참을 바닥에서 뒹굴거리며 심심함을 외치던 오소마츠는 제풀에 지쳤는지 멍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햇살에 눈이 따가워 인상을 찌푸리며 집을 나올 때보다 더욱 부푼 배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한가롭구만. 매일매일 하는 일 없이 놀러다니던 니트였기에 평소에도 한가로웠지만, 여긴 뭐랄까 시골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말 말 그대로 한가로웠다.

 

 “아가~ 자니?”


 “..할무니!”


 “밥은 먹었누?”

  누군가의 인기척에 몸을 일으키자 앞집 할머니가 대문을 들어선다.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찐 옥수수가 한가득이다. , 먹을거다. 오소마츠의 시선이 옥수수에게로 간 것을 눈치채고는 인심좋게 웃은 할머니가 쟁반을 내민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쟁반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제 옆자리를 팡팡 손으로 내리치며 어서 앉으라고 손짓한다. 할머니에게 옥수수 하나를 건네고 저도 하나 집어들고는 우물우물 씹는다. 언제 시간이 이리도 지났는지 산너머로 울긋불긋 노을이 저무는게 보인다. , 경치 좋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없이 옥수수만 삼켜댔다. 오소마츠의 한 쪽엔 벌써 뼈대만 남은 옥수수 서너개가 뒹굴고 있었다.

 

Posted by 시오넬
2016. 8. 16. 20:57

 체중이 늘었다. 딱히 과식을 한 것도 아니고, 활동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기에 갑작스레 늘어버린 2kg는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요새 좀 많이 먹었나……. 스스로의 배를 슥슥 매만지며 난감하다는 얼굴로 59kg를 가르키는 체중계를 바라보던 오소마츠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선 카리스마 레전드 인간국보님의 이미지가……. 그렇게 생각하며 체중계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오소마츠는 늘어버린 체중을 단순히 살로 치부하면 안 되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누가 임신을 시켰나?

W. 임 푸른

 

 

 

 

 피곤하다. 몸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 올리며 집안을 어슬렁거리자 형 살쪘어? 하는 물음이 들려온다오소마츠의 몸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던 토도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던 오소마츠는 토도마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살찐거 아냐? 태연하게 묻는 모습에 오소마츠가 자신의 배를 빤히 바라보더니 아니? 아닌데? 형아가 무슨 살이 쪘다고 그래? 하며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카라마츠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형님 살쪘어?

 

, 아니라고!”

 

 다른 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소마츠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같이 부대끼며 지냈는데 여태 살이 찐 것도 몰랐다. 많이 찌진 않은 거 같은데, 그래도 슬슬 관리 하는 게 어때? 토도마츠가 나른하게 웃으며 말했다. 토도마츠의 말에 오소마츠가 발끈하더니 소리쳤다.

 

살 안쪘다니까!”

 

 그래도 나름 신경은 쓰였는지 그 날 저녁부터 식사량을 확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하루하루 몸이 불어나는 느낌이다. 빠칭코에선 걸핏하면 졸기 일쑤였고,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거실과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르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역시 비틀거리며 겨우 계단 난간에 버티어 서있는 오소마츠를 발견한 카라마츠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 다가갔다.

 

형님, 어디 아파?”

 

이 형아가 아프긴 무슨~”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웃으며 바르르 떨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하게 점점 더 둥글게 변하는 것 같다. 카라마츠의 의심스런 눈길을 뒤로한 채, 오소마츠는 주춤주춤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소마츠가 자취를 감춘 건 그로부터 이주일이 지난 후였다.

 

 

형한테 연락 왔어?”

 

아니, 아직…….”

 

, 이 망할놈의 형은 핸드폰도 꺼놓고 대체 어디로 간거야?”

 

 하루가 멀다 하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경찰에 실종신고도 내보았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그 어떤 물건도 없이 달랑 지갑과 핸드폰만 들고나가서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 더욱 막막했다. 형제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한편 마루에 누워 아이스크림을 물고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오소마츠는 전보다 더욱 부풀어 오른 배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제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부모님에게조차도 비밀로 하고 도망치듯이 온 이 곳에서 오소마츠는 혼자서 나름 잘 지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산책도 가고. 처음에는 혈혈단신으로 시골에 내려와서는 홀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도 좋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바지를 입자니 도저히 배가 눌려 입을 수가 없어서 별 수 없이 하늘하늘, 발목까지 내려오는 연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소마츠의 손끝에는 천사가 그려진 아가수첩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Posted by 시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