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흡혈귀의 어버이에게…."
검은색 정장을 단정하다 못해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의 모습은 마치 극단에나 나올 법 한 인사를 하며 격식을 차리고 있었다. 정장 자켓의 왼쪽 가슴에 위치한 주머니에는 곱게 접혀진 붉은색의 손수건 마저 꽂혀있었다. 검은 대리석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흰 장갑을 낀 양손 중, 오른손은 자신의 배에, 왼손은 옆으로 펼쳐 예를 갖춘 남자는 고개를 숙인채로 씩 미소지었다. 고양이를 닮은 노란색 눈동자의 동공이 꼭 야생동물의 그것처럼 가늘게 수축해있었다.
"…미천한 자식이 인사 드립니다."
남자가 인사하는 곳은 어둡게 음영이 지어 누가 앉아있는지 조차 분간하기가 어려웠지만 남자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꽤 오랜시간을 그러고 있었건만, 남자는 힘들지도 않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할 뿐이었다.
"이세상의 모든 흡혈귀의 왕……"
남자의 눈동자가 순간이었지만 날카롭게 반짝였다. 입가에는 여전히 시린 미소가 걸려있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보이는 두 개의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창가로 스며드는 달빛에 반짝이는 송곳니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것만 같았다.
"본고레 데치모들이시여."
일순간 성 밖에서는 커다란 소음과 함께 번쩍이며 번개가 내리쳤다. 순간이었지만 음영 속에 가려진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도 검은 암흑의 망토를 두른 두 남녀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남자를 차갑고도 시린 눈동자로 바라보고있었다. 그 중, 여자의 눈동자가 위로 날카롭게 찢어져 수축했다.
"기다렸다."
"…어머니."
"─나의 자식이여."
성은 다시 어둠에 잠식했다.
Vampire Arrange
(뱀파이어 어레인지)
W. 임 푸른
여는 이야기
뱀파이어. '흡혈귀(Bloodsucking Creature)'로 인간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존재. 흉악한 죄악을 저질렀거나 자살한 시체 등이 심야에 무덤을 떠나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가 인간을 만나면 공격해 신선한 피를 먹는 존재이다. 간혹 박쥐로 변장해 다니기도 한다. 이들은 날이 밝아오면 다시 자신들이 묻혀 있던 무덤의 관을 열고 땅속 깊숙이 들어가 수면에 빠지는 행동을 보인다. 뱀파이어의 공격을 받은 희생자들은 죽은 뒤에 뱀파이어가 된다. 흔히 뱀파이어는 백짓장 같은 창백한 얼굴(pallid face), 고양이 눈빛 같은 반짝이는 눈동자(staring eyes) 등을 전형적인 외모 스타일로 갖고 있으며 특히 이들 뱀파이어는 그림자가 없고 거울에 비추어도 외모가 보이지 않는다. 공포스런 존재인 이들 뱀파이어는 십자가(crucifix)를 보여 주거나 잠을 잘 때 목 주변에 마늘(garlic)로 장식한 화환(wreath)을 걸어두면 접근하지 못하고 심장 부위에 말뚝(stake)을 박은 뒤 몸체를 불에 태우거나 대낮에 그들이 잠자고 있는 곳을 파괴하거나 은으로 된 무기로 공격하면 이들을 영원히 퇴치시킬 수 있는 비법으로 알려져 있다…….
……정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설명은 저렇지만 세상에 알려진 뱀파이어의 모습과 실제의 뱀파이어의 모습에는 상당한 갭이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낮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오로지 순혈 뱀파이어로 인해 뱀파이어가 된. 본래 인간이었던 자들만이 낮에 돌아다니지 못하고, 모든 뱀파이어가 인간을 물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또한 오로지 순혈 뱀파이어들의 권역이었다.
뱀파이어들에게는 여러 가문이 있었는데, 순혈 뱀파이어 중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본고레'. 바로 이 세계의 모든 흡혈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속하는 가문이었다. 그만큼 유서가 깊고, 오래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을 다스릴 힘이 존재했다. 본고레 가문의 뱀파이어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막강한 힘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지혜와 혜안은 그들이 이 일그러진 세계에서의 신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어두운 세계에서 어떤 것도 그들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였고, 어떤 것도 그들에게 악이 될 수 없었다.
초대 가주인 본고레 프리모부터 이어진 힘은 다음 세대에게 계승 될 때마다 힘이 누적되어 가주가 보다 큰 힘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왔고, 역대 가주들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쌍둥이로 태어난 본고레 데치모들에게는 전대 가주의 힘이 각 데치모들에게 오롯이 계승된 탓에 이전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왕좌의 자리에서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쌍둥이로 태어난 본고레 데치모는 어둠을 상징하는 '사와다 츠요'와 빛을 상징하는 '사와다 츠나요시' 둘로 나뉘어 이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츠요가 주로 어두운 마력을 사용한다면, 츠나요시는 빛의 마력을 이용했다. 흡혈귀의 어머니, 아버지라 불리우는 둘은 협력하여 점차 세력을 더욱 키워나갔고, 마침내 초대 이후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